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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금장치를 통한 기계비평

 

 

  최근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기계는 디지털 도어락 이었다. 중학생 시절 현관문에 처음으로 설치된 도어락은 0에서 9까지의 숫자들과 샵(#), 그리고 별(*)로 조합된 특정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만 문이 열리도록 해놓은 전자 잠금장치였다. 열쇠를 들고 다니기가 귀찮아 열쇠로 문을 열던 때에도 곧잘 벨을 누르던 내게 도어락은 아주 간편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기계였다. 비밀번호 8자리만 누르면 문이 열린다니! 심지어 그 비밀번호는 머릿속에 늘 기억해두고 다니니, 귀찮게 열쇠를 들고 다닐 필요도, 잃어버렸을 때 당황하며 지나온 길을 돌아갈 일도 없는 혁신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도어락이 설치되어있는 집에서 산지 몇 년이 흘러 얼마 전 겨울, 전적으로 이 잠금장치를 신뢰하던 내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비밀번호를 입력해도 문이 열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 때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약속으로 외출하려던 나와 나를 배웅해주려 따라 나오신 어머니만 닫혀버린 현관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심지어 현관문 너머 주방에서는 가스레인지에 불까지 켜져 있는 상황이었으니 꽤나 위급한 상황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내 생일과 의미 있는 번호들의 8자리 숫자조합은 아무리 정확히 입력해도 현관문을 열어주지 못했다. 결국 119와 도어락 기사분을 부르고 몇 시간 뒤에야 겨우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이 일은 우리 집의 도어락을 교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도어락이 현관문에 설치되어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도어락도 고장 나면 또 어떻게 집에 들어가지?’

 

 

  하루 24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일을 하지만 매일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에는 문단속또한 포함된다. ‘이라는 삶의 가장 은밀한 장소를 외부로부터 분리하고,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현관문에 있는 열쇠구멍으로 특정 패턴의 홈이 나있는 열쇠를 끼워 돌려야 열리도록 되어 있는 잠금장치, 우리 집에 설치되어 있는 것처럼 특정 숫자조합을 입력해야만 문이 열리도록 해놓은 잠금장치, 특정 카드를 태그해야만 출입할 수 있는 잠금장치, 나아가서는 홍채, 지문과 같은 우리 몸의 일부를 접촉해야만 열리도록 설정된 잠금장치도 존재한다. 이렇듯 잠금장치들은 제각기 다양하고 독자적인 형태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대한 종류의 잠금장치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집이라는 은밀한 삶의 현장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수많은 잠금장치들의 임무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정말 이 잠금장치들은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내는 든든한 존재이기만 할까?

 

  사실 잠금장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잠금장치의 역사는 기원전 4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 시작한다. 특정한 길이의 나무 핀을 특정한 패턴으로 밀어 올리면 문이 열리도록 설정되어있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잠금장치는 그 재료로 목재를 사용했다는 것 외에는 현대사회의 열쇠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림-1]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잠금장치

  이런 형태의 잠금장치는 이집트로 넘어가 목재였던 핀이 청동으로 소재가 바뀌었다는 것 외에 원리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후에 이런 잠금장치 시스템은 유럽국가로 전파되면서 1세기 동안 유지되다 중세시대에 들어서며 워드 자물쇠라는 형태의 잠금장치로 발전했다. ‘워드(Ward)’라는 원통 안에는 특정한 패턴의 장애물이 붙어있어, 그 패턴대로 홈이 나있는 열쇠를 끼우지 않는 이상 열리지 않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열쇠의 특정 패턴을 파악하기만 하면 똑같은 패턴의 열쇠를 복제하여 자물쇠를 열 수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 복잡한 패턴으로 열쇠의 복제를 방지하려 하였으나, 열쇠를 복제하는 방식 역시 잠금장치의 발전에 따라 함께 발전했다. 이후 핀을 모두 옮기고, 이와 더불어 특정한 개수의 핀 또한 특정 높이까지 들어 올려야 하는 더블 액션식 레버 텀블러 자물쇠, 정품 열쇠만이 장애물에 걸리지 않고 자물쇠를 열 수 있도록 한 자물쇠 등이 등장했고, 19세기 중반에는 높은 안전성의 예일 자물쇠가 등장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이 사용했던 방식을 적용한 예일 자물쇠는 다양한 형태로 업그레이드되며 안전성을 더해갔다. 그러다 20세기에 들어서 도어락 형식의 자물쇠가 등장하게 된다. 모든 핀들이 특정한 높이로 들어 올려져야만 원통이 돌아가며 문이 열릴 수 있도록 설정해둔 도어락 자물쇠는 지금까지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잠금장치 구조이다. 그러나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발전해오며 더욱 복잡해진 자물쇠도 현대에 이르러서는 열쇠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열쇠방에 가서 같은 형태로 열쇠를 복제해 얼마든지 손쉽게 열 수 있다. 심지어 얇은 철사 하나만으로도 간단하게 문을 열고 빈 집을 터는 사건도 자주 들린다. 이 상황에서 더욱 집을 완벽하게 지키기 위해 등장한 것이 전자 카드식 도어락, 비밀번호식 도어락, 생체 인식 도어락과 같은 디지털 도어락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잠금장치의 긴 역사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잠금장치를 사용해왔는지, 어떤 식으로 잠금장치가 변화해왔는지가 아니다. 그 오랜 역사동안 잠금장치의 변화를 이끈 것은 무엇인지 이다.

  

  기원 전 역사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잠금장치 시스템이 집을 지키기 위해 더욱 복잡해졌다면, 최근 수십 년 동안은 보다 은밀한 형태로 변화되어왔다. 오늘날에는 기계에게 우리가 문을 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 증명의 방법은 특정한 신분을 나타내는 전자 카드가 될 수도 있고 특정 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번호가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홍채나 지문, 정맥과 같이 세상에 단 한명만이 가지고 있는 신체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잠금장치를 이렇게 은밀한 형태로 바꾸어 놓은 것일까? 나는 잠금장치가 주체적으로 그 형태를 바꾸었다기보다는 어떠한 존재에게 쫓기면서 어쩔 수 없이 변화해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어떠한 존재를 기술의 발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언급했던 잠금장치의 긴 역사에서 그 형태와 원리를 바꾸게 만든 것은 잠금장치를 열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이다. 새로운 자물쇠와 열쇠의 개발의 바탕에는 이전의 자물쇠를 열 수 있는 가짜 자물쇠와 가짜 열쇠의 개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더 이상 정교함과 복잡함만으로는 삶의 은밀한 현장을 지킬 수 없게 만들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은밀한 증거를 제시해야만 열릴 수 있는 구조의 잠금장치를 고안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변화된 잠금장치는 외부로부터 우리의 집을 완벽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고 싶다.

 

  잠금장치의 발전은 가짜 잠금장치의 발전과 함께 해왔다. 가짜 잠금장치가 우리의 은밀한 장소를 위협할 때마다 잠금장치는 새로운 형태로 업그레이드되어 그 위협에 대항했다. 그러나 이 잠금장치와 가짜 잠금장치의 오랜 대결구도는 갈수록 가짜 잠금장치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잠금장치라는 기계의 역사에서 한 번도 풀리지 않은 잠금장치는 없었다. 기존의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잠금장치가 완벽하게 안전하지는 못하다는 것이 입증되는 순간 우리는 또 다시 완벽한 안전성을 추구하며 새로운 형태의 잠금장치를 만들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완벽한 안전성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무너져 내렸고, 쫓기듯이 새로운 잠금장치의 개발로 이어져 다다른 곳이 지금의 생체인식 잠금장치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체인식 잠금장치 역시 안전하지는 못하다. 잠금장치의 가장 모순적인 부분은 외부로부터 은밀한 장소를 지키기 위해 출입의 자격을 가진 사람에게만 문을 열어주지만 그 자격을 가진 사람의 기준이 너무나 직관적이라는 점이다. 잠금장치는 사람을 보고 출입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것을 보고 그 여부를 판단한다. 자물쇠를 풀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사람, 출입이 가능한 카드를 가진 사람, 비밀번호를 가지고 있는(알고 있는) 사람, 잠금 체계를 풀 수 있는 신체 일부를 가진 사람은 무조건 잠금장치를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시리즈나 <007>시리즈와 같은 첩보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출입이 가능한 신분이 아닌데도 간단하게 잠금장치를 풀어버리고 잠입하는 장면이 빈번히 등장한다. 최근에 개봉한 <월요일이 사라졌다>에서도 정부군이 홍채인식 잠금장치에 일곱 쌍둥이인 주인공들 중 한 명으로부터 적출한 눈을 인식시켜 단번에 통과해버린다. 이런 잠금장치의 무력함은 스크린 밖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년 5월에 출시된 삼성 갤럭시 s8에 탑재된 자칭 현존 최고의 생체보안 기술인 홍채인식 시스템은 독일 해커단체인 카오스컴퓨터클럽(CCC)’에게 너무나 무력하게 뚫려버렸다. 근접 촬영한 남성의 홍채 사진을 삼성 레이저 프린터로 출력한 후 그 위에 콘텍트 렌즈를 씌워 인식시키니 단번에 잠금이 풀렸다는 것이다. 이제 잠금장치를 여는 데에 굳이 사람이 필요하지도 않다. 필요한 것은 고화질의 홍채 사진을 담아낼 카메라와 레이저 프린터, 그리고 콘텍트 렌즈 한 알이다. 잠금장치에게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풀리느냐가 아니라 무엇에게 풀리느냐가 되어버렸다. 열쇠가 굳이 진짜가 아니어도 된다. 가짜열쇠의 존재는 잠금장치에게 오랜 시간동안 아주 고질적인 문제였으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그 존재감이 더욱 더욱 강해진 것 같다. 잠금장치는 늘 우리의 중요한 삶의 공간을 지켜주는 아군으로서 자리를 지켜왔으나,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임무를 다해야 하는 상황에서 빠르게 적군으로 돌변해버린다.

 

  지금까지 언급한 가짜 잠금장치의 존재가 우리의 삶의 현장에 대한 외부적인 위협이라고 한다면, 잠금장치 그 자체는 내부적인 위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종종 열쇠를 사용해서 문을 열려고 할 때 너무 힘을 줘 돌리려 하다 열쇠가 부러지는 경우가 있다. 열쇠구멍에 단단히 박혀 빠지지도 않는 열쇠조각은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을 절망스럽게 만든다. 또한 내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도어락 사건 역시 기기고장이 그 원인이었다. 잠금장치는 우리의 공간을 지키는 충직한 경비원이지만, 그리 똑똑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것이 기계가 가진 최대의 약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기계라고 하여도 외부적 충격, 혹은 지속적인 관리가 없을 때에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삐걱거리게 된다.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인공지능도 오류로 인해 인류에게 공격성을 띄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SF영화 역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분명 기계는 우리에게 많은 편리를 제공하고 있으나, 기계의 오류는 불편함을 넘어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잠금장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잠금장치는 얼마든지 우리의 삶의 현장을 갈취할 수 있다. 당장 내가 겪은 도어락 사건에서도 우리 집을 위협했던 존재는 외부의 침입자도, 켜져 있던 가스레인지도 아니었다. 바로 우리를 들여보내주지 않는 디지털 도어락이었다. 잠금장치가 오작동하는 순간, 우리의 사생활이 그대로 담겨있는 삶의 현장은 곧바로 적에게 노출된다. 그것도 한때 우리의 든든한 아군이었던 적에게 말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정리해보면, 처음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게 된다. 잠금장치들은 우리의 집을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이기만 할까? 내가 생각하는 답은 아니. 우리의 안락한 집을 위협하는 존재가 점점 강해질수록, 정교해지고 복잡해지고 은밀해진 잠금장치들은 어느 순간 집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을 빼앗아갔다. 집에 출입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잠금장치에게 증명해야만 하는 우리가 잠금장치보다 우위에 서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그 자격이 된다고 해도 이따금 잠금장치들은 우리를 배신하고 우리의 삶의 현장을 지배해버리는데 말이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의 긴 역사 속 우리가 이룩한 기술발전의 모든 부분에서 우리가 우위에 서있다고 할 수 있을까? 기계들은 단순히 우리가 맡긴 임무를 해내는 존재에 불과할까?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방심의 순간을 노리고 있던 기계들은 빠르게 우리의 삶에서 주도권을 빼앗아갈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들로부터 다시 주도권을 되찾아 오는 일은 고장난 도어락 앞에서 분투한 몇 시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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